혁명은 시간의 경첩이다. 프랑스혁명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선형적인 시간 흐름을 끊고, 시계열 자체를 조작하려고 시도했다―“새로운 역법을 만든 것”. 시간은 탈구되었다. 순환(révolution)이었던 것은 더 이상 되돌아오지 않는 역전(révolution)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실한 개연성 및 상호 관계―“모든 혁명은 독립 전쟁이다”― 속에서 나타나며, 완전히 우발적이지도 완전히 필연적이지도 않다. 공화국은 어디까지나 역사 속에서 발명된 것이며, 그 역사는 하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혁명은 모든 가능성들의 합계 속에 세워진다”. 정치는 이미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며, 여러 정치들 사이의 분열 및 불화를 내재화하려는 몸짓들 속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불화, 즉 상상과 현실의 첨예한 화학 작용은 모든 가능성들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절실하게 나타난다. 가장자리, 식민지―“혁명은 끝없이, 가장자리에서, 다시…”. 이 첨단을 시야에 넣지 않고서는 누구도 보편에 대해 말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진정한 보편성은 가장 소외된 장소, 가장 예외적인 장소에서도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성은 완전한 차이를 경유한 완전한 차별을 산출할 뿐이다―“인종적 불평등이 법적 불평등을 대체했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총을 쥐고서 했던 말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영원히 기다려질 보편성의 다소 불길한 전조를 이룬다―“보라, 이것이 우리의 자유다”.
여기서 자유와 총의 등치는 ‘혁명은 곧 폭력’이라는 진부한 공식처럼 보인다. 혁명은 종종 악마화되지만 그 자체로 폭력적인 혁명은 없다―“‘민주주의의 병리학’ … ‘공포정치’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아예 존재했던 적조차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혁명을 위한 폭력만이 있다. 혁명은 시민을 발명했고, 시민 권력을 토대 삼아 공화국을 발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화국의 법은 폭력을 최대한 주변화했다―“자유 국가에서 군부 권력은 가장 제약받아야 한다”. 폭력을 수반한 혁명의 억압은 폭력성의 현현이기보다는, 안정되지 않은 화학 작용 속에서 돌발하는 폭력들에 대한 서툰 응답이었다.
그러나 억압은 분명 있었다. 문명화 기획이 그것이다. 엘리트는 인민의 대표를 자처하며 인민을 조형하려 했다. 이에 맞닥뜨린 “민중은 엘리트와 변증법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정치화되었다”. 그러므로 혁명이라는 서사 속에서 정치는 무엇보다도 일종의 ‘과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엘리트’와 ‘인민’, 이 두 개념 사이의…과정”. 그것은 모든 구분․구별 도식을 넘어, 이것과 저것 사이에 공통의 공간을, 공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이다―“공적 공간을 구축하려는 의지”. 그리고 미개한 인민을 문명화하는 엘리트라는 구도가 각종 형태로 탈바꿈하며 반복되는 한―“불량배와 신사”― 이 과정 역시 끝날 수 없다. 고착될 수 없는 인민이 있는 만큼, 결코 고착될 수 없는 정치들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 역시 단순히 개별적 개인들의 집합일 수 없다. 그것은 “운명공동체”이자 “결사체”다. 이제 혁명이 발명한 공화주의적 정치는 “이익과 연대의 변증법”이 전개되는 장(場)인 공통 공간의 수호로 요약될 것이다.
다섯 편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탈구된 시간에서 출발하여 소외된 공간을 거쳐 공적인 공간의 구축으로 이어지는 혁명을 다시 발견한다. 이것은 발명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 발견이다. 이 후기는 그 가치를 모색하는 가설적 독해다.
출처 : 피에르 세르나 외 공저, 김민철, 김민호 공역,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 끝나지 않은 프랑스혁명> (2013) '역자후기' 중
이러한 불화, 즉 상상과 현실의 첨예한 화학 작용은 모든 가능성들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절실하게 나타난다. 가장자리, 식민지―“혁명은 끝없이, 가장자리에서, 다시…”. 이 첨단을 시야에 넣지 않고서는 누구도 보편에 대해 말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진정한 보편성은 가장 소외된 장소, 가장 예외적인 장소에서도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편성은 완전한 차이를 경유한 완전한 차별을 산출할 뿐이다―“인종적 불평등이 법적 불평등을 대체했다”. 투생 루베르튀르가 총을 쥐고서 했던 말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영원히 기다려질 보편성의 다소 불길한 전조를 이룬다―“보라, 이것이 우리의 자유다”.
여기서 자유와 총의 등치는 ‘혁명은 곧 폭력’이라는 진부한 공식처럼 보인다. 혁명은 종종 악마화되지만 그 자체로 폭력적인 혁명은 없다―“‘민주주의의 병리학’ … ‘공포정치’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아예 존재했던 적조차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혁명을 위한 폭력만이 있다. 혁명은 시민을 발명했고, 시민 권력을 토대 삼아 공화국을 발명했다. 그리고 바로 이 공화국의 법은 폭력을 최대한 주변화했다―“자유 국가에서 군부 권력은 가장 제약받아야 한다”. 폭력을 수반한 혁명의 억압은 폭력성의 현현이기보다는, 안정되지 않은 화학 작용 속에서 돌발하는 폭력들에 대한 서툰 응답이었다.
그러나 억압은 분명 있었다. 문명화 기획이 그것이다. 엘리트는 인민의 대표를 자처하며 인민을 조형하려 했다. 이에 맞닥뜨린 “민중은 엘리트와 변증법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정치화되었다”. 그러므로 혁명이라는 서사 속에서 정치는 무엇보다도 일종의 ‘과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엘리트’와 ‘인민’, 이 두 개념 사이의…과정”. 그것은 모든 구분․구별 도식을 넘어, 이것과 저것 사이에 공통의 공간을, 공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이다―“공적 공간을 구축하려는 의지”. 그리고 미개한 인민을 문명화하는 엘리트라는 구도가 각종 형태로 탈바꿈하며 반복되는 한―“불량배와 신사”― 이 과정 역시 끝날 수 없다. 고착될 수 없는 인민이 있는 만큼, 결코 고착될 수 없는 정치들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 역시 단순히 개별적 개인들의 집합일 수 없다. 그것은 “운명공동체”이자 “결사체”다. 이제 혁명이 발명한 공화주의적 정치는 “이익과 연대의 변증법”이 전개되는 장(場)인 공통 공간의 수호로 요약될 것이다.
다섯 편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탈구된 시간에서 출발하여 소외된 공간을 거쳐 공적인 공간의 구축으로 이어지는 혁명을 다시 발견한다. 이것은 발명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는 발견이다. 이 후기는 그 가치를 모색하는 가설적 독해다.
출처 : 피에르 세르나 외 공저, 김민철, 김민호 공역,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 끝나지 않은 프랑스혁명> (2013) '역자후기' 중